SUB | 서브 9801 special text 스페셜 텍스트 | 산울림, 미국에 Lou Reed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김창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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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은 우리 대중 음악사에서 중요한 경계점이 된다. 바로 대학가요제의 탄생과 산울림의 등장이라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모두 그 해에 일어났던 것이다.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가 대상을 수상한 7

7년의 'MBC대학가요제'는 대학가요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록 음악의 역사를 대변하는 그룹인 산울림이 탄생한 계기가 된다.
대학가요제의 탄생은 우연에 의한 것은 아니다. 70년대 중반의 대마초 파동으로 침체한 가요계는 변화가 필요하였고 대학가요제는 이에 가장 걸맞은 행사였다. 요즘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대학 가요는 그 때까지의 주류 음악에 대한 대안(alternative)으로서 등장했다고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가요제는 외형적으로 대학 문화가 주류 문화로 진출하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며, 또한 주류 문화가 전복되는 첫번째 사건으로 기록 될 수 있다. 공중파로 생중계된 대학 가요제의 장면, 수십 명의 더벅머리 대학생들이 청바지 차림으로 같은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은 흑백 TV앞에 모여 있던 대중들에게는 그야말로 문화 충격의

현장이었다.
대학가요제의 여파는 너무나 컸다. 77년의 'M

BC대학가요제'이후, '해변가요제', '강변가요제'등 이와 유사한 행사들을 방송국과 신문사 등에서 경쟁적으로 개최하게 되며 이러한 대학생 대상의 각종 가요제들은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다. 대학 가요제에서 가장 큰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캠퍼스 그룹의 연주 장면이었다. 그래서 초기의 대학 가요제는 캠퍼스 그룹들에게 후한 인심을 베풀었고 이 때를 캠퍼스 그룹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샌드페블스, 활주로, 블랙 테트라, 작은 거인, 라이너스, 옥슨, 건아들 등, 이 모두가 화려했던 70년대 말, 80년대 초를 장식한 캠퍼스 록 그룹 들이었다. 장발 단속, 대마초 파동등의 탄압 속에서 비록 대안적이기는 했지만 캠퍼스 록 그룹은 록 음악을 갈망하던 많은 대중들

의 욕구를 해소시켜 줄 수 있었다. 캠퍼스 록 그룹들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대학가요제는 그런 의미에서도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 가요제를 통해 대학 가요의 모습이 변화하는 과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대학 가요제 초기의 대학 가요제는 록과 포크라는 두 장르에 깊은 관련을 가진다. 록과 포크는 대학의 모습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음악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장르를 통해 대학 가요는 기성 가요들이 행할 수 없는 '실험'을 보여주었으며 기성 가요에 대한 견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또한 80년대 초반까지 대학 가요제에서 각광받은 노래들이 '솔로'보다는 중창이나 그룹 사운드와 같은 공동체의 음악이었음도 순수한 대학 가요의 모습이 무엇이었나를
반증해 주고 있다.
79년부터 83년까지의 시기는 그래서 대학 가요제의 황금기로 기억될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학 가요는 이미 기성 가요의 수준을 능가하고 있다. 이범용, 한명훈의 <꿈의 대화>,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 마그마의 <해야>, 조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 에밀레의 <그대 떠난 빈들에 서서> 등이 이 시기에 발표된 대학 가요의 명곡들이다. 그러나 공중파 방송을 통해야하는 대학 가요제의 제한 조건 때문에 프로테스트 정신의 노래들이 대학 가요제를 통해 발표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그래서 민중 가요는 다른

대학 가요와 별개의 방향으로 발전해 가게 된다. 이것이 대학 문화를 이분시키는 원인이 되었으며, 이러한 이분 현상은 이미 80년대 초부터 일어나고 있었다.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 대학 가요제를 통해 발표되는 곡들과 기성 가요 사이에 변별점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기성 가요들은 발빠르게 대학 가요들의 '순수'와 '실험'을 모방하게 되고, 대학 가요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반면, 상을 받겠다는 목적 의식을 가진 대학 가요들은 기성 가요를 흉내내게 되고, 기성 가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음악들이 반복 생산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와 같이 실험과 순수의 정신이 퇴색해 가는 현상은 80년대 후반기로 넘어가면서 더욱 극대화된다. 형태적으로 봐도 중창이나 그룹 사운드 보다는 솔로 또는 듀엣 위주의 곡들이 인기를 얻었음이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물론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88년 'MBC대학가요제' 대상)와 같은 예외의 경우도 찾아볼 수는 있지만.
이 시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학 가요제가 대학생들에게 가수가 되는 등용문의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이 때의 대학 가요제의 수상자들은 열 중 아홉은 독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가수 데뷔'를 선언한다. 대학 가요제가 대학 가요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행사가 아닌 가수를 뽑는 '노래 자랑 대회'로 전락한 셈이다.
90년대에 들면서부터 대학 가요제는 그 성격이 더욱 변해 간다. 과거 오케스트

레이션 반주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행사가, '시퀀서'나 전문 연주인의 도움으로 '미리 녹음된 반주(MR)'에 노래하거나, 심지어 '노래까지 미리 녹음(AR)하여'방송하는 행사로 바뀌게 된다. 젊음, 패기, 순수, 용기, 도전 등의 말로 표현되던 대학의 모습이 '기성 사회의 모방'으로 변질된 것과 같은 맥락의 현상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 가요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응이 많이 달라진다. 이미 대학 가요와 기성 가요의 변별성은 없어진지 오래이며, 흔하게 볼 수 있게 된 대학생 가수에 대해 일반인들의 관심이 예전 같지가 않음은 당연한 것이다. 또한 과거와 달리 가수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가수 지망생들에게 대학 가요제의 필요성은 사실상 없어져 버린다.
결국 대학 가요제의 존재 가치가 논란의 대상이 된다. 연례 행사로 이루어지는 대학 가요제가 점점 형식적인 행사로 변해 버리며, 이에 대한 언론과 일반인의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진 것이다. 결국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대학 가요제는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게 되었고, 과거의 '노래 자랑 대회'적인 성격에서 '축제'의 성격으로 변화를 모색한다. 그러나 대학 가요제의 존재 가치가 예전만큼 의미있게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대학 가요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음악을 통한 대학과 기성 세대간의 대화의 장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대학 가요제는 거의 단절되다시피 한 대학 문화와 기성 세대의 문화가 교류할 수 있는 역할을 하였으며, 서로의 문화가 공유될 수 있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능력 있는 음악인들이 소개되는 자리가 되기도 하였으며, 음악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희망과 목표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1997년 초 MBC에서는 'MBC대학가요제'의 장면을 비디오 CD로 만들었다. 이 CD에는 샌드페블즈, 활주로, 심수봉, 마그마, 무한 궤도 등 20년 대학 가요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역사는 이런 것이다. 비록 지금의 대학 가요제가 초기 때와 같은 '실험'과 '순수'의 대학 가요를 생산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대학 가요제가 지난 20년의 대학 가요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대학 가요제의 역사를 발전시킬 의무는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문동욱 / 오디오 컬럼니스트)

70년대 문화의 내면 풍경을 기억하면 결국 두 가지로 그러나 아주 대척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바짝 치켜올린 머리, 새마을 모자, 교련복 등이 한켠이라면 치렁한 장발, 통기타 등이 다른 한켠에 서있다. 전자가 박정희 영구 집권의 가도 역할을 하는 유신 정국의 상징이라면 후자는 아마 청년 문화의 상징쯤 될 법하다. 사실 청년문화는 상당히 애매한 언사이다. 청년이라는 것이 계급적 정체성이나 성적 정체성의 존재가 아니고 단지 세대를 정체성의 지반으로 삼는 것이기에 그렇다. 물론 이즈음 소위 신세대 현상으로 인해 세대 문제가 사회적 문제에 중요한 화두로 개입되고 또한 그것이 사회적 갈등의 한 측면으로 작용하는 대목을 유념하면 청년이라는 것이 상당한 함의를 지닌 범역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계급 문제가 여전히 사회적 적대화 모순의 중심으로 작용하고 있던 70년대를 소급해 본다면 사정이 달라지기에 그렇다.
하여간 우리 나라의 70년대에도 청년 문화가 자기 정체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선 대중 음악, 문화, 영화 등 각종 매체나 장르를 통해 자신의 무늬결과 독특함을 드러냈다. 기실 우리 사회에서 청년 문화의 원형질은 이른바 4.19세대라 칭해지는, 문학으로 보면 김지하, 김승옥, 염무웅, 박태순 등의세대로부터 배태되었다. 그러나 그 세대는 아무래도 소위 고급 문화 혹은 고급 예술 중심으로 편제되던 존재들이었기에 일반성의 측면에서는 덜 대중적이었다.
당시 청년 문화의 상징을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로 들지만 그것은 표피적인 것이다. 그것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하여간 당시 청년들의 새로운 감수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고등학교 2학년 나이에 일약 신춘 문예 당선자가 된 최인호가 등재된다. "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 보는군"이라는 영화속 신성일과 안인숙의 대사로 더 유명한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은 이른바 호스테스 장르의 시조가 되는 동시에 최인호라는 청년 작가를 당대적 감수성의 기념탑으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그의 문학적 진가는 다른 작품에서 발휘된다.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은 동명 영화로 만들어져 공전의 흥행에 성공한다. 최인호의 작품은 영화 쪽으로 넘어가 영화의 청년 물결을 일렁이게 한 것이다. 신상옥 뒤를 열심히 쫓아 다니던 이장호는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을 동명 영화로 만들어 공전의 흥행에 성공했고, 그 영화가 청년적인지 아닌지는 다른 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어쨌든 그 영화를 만든 이가 한국영화의 새로운 세대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70년대 영화의 핵심은 아무래도 하길종 감독이다. 영화 '대부'를 연출한 코폴라와 영화학교 동기동창인 그는 역시 최인호의 소설 '바보들의 행진'을 영화화해 당시 청년 세대들의 내밀한 아픔과 쓸쓸함 그리고 치기를 적절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에서의 재미난 대목 하나. 당시 전세계를 휩쓸고 있던 흐름이 하나 있었으니, 이른 바 스트리킹이다. 간고한 지배 체제와 제도, 각종 인습과 규범을 벗어나고픈 세계 청년들이 그 탈주의 욕망을 길거리를 나체로 뛰어가는 것으로 표현하던 방식이었다. "나 지금 스트리킹 중이야." 하길종 감독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그내복처럼 당시 청년들을 옭죄고 있던 군사 문화적 억압이었을 것이다. 김지하가 당시 하길종의 영화 작업에 참가했다는 것은 알려진 이야기이다.
문학도, 영화도 그랬지만 역시 청년 문화의 집강소는 대중 음악, 그 중에서는 포크 계열의 음악이었다. 그 중 청년 문화를 가장 오롯이 반영하던 뮤지션은 이장희, 양희은, 트윈폴리오 등이었다. 물론 그 뒤로 어니언스, 투코리언즈, 원플러스원, 김정호, 윤형주, 바

블껌 등이 줄을 잇는다. 여기서 당연히 김민기가 빠졌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민기 음악은 당시 일반적으로 회자되던 청년 문화의 흐름에 걸쳐져있지만 반독재 저항 문화의 예각으로 보는 것이 그에 대한 온당한 시각이다. 바로 이런 측면, 다시 말해 김민기가 청년 문화와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것이 청년 문화에 대한 논쟁의 지점이 된다. 당시 청년 문화는 점차 상업성에 물들어 간다는 비판에 직면해있었다. 사실 우리 나라의 청년 문화는 자생적이라기 보다 당시 전세계를 압도하고 있던 청년, 학생 운동의 지체된 영향, 그것도 표피적인 영향의 산물로 볼 수도 있다. 혹자는 왜곡된 영향이라고도 했다.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까지 세계는 말 그대로 변혁의 열기로 뒤덮여있었다. 유렵에서는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에서부터 영국, 독일 등 각 국가에서의 학생-노동자 연대를 통한 그리고 청년들이 가세한 반체제 운동이 연일 가열되고 있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주의 때로는 마오이즘을 사상적 무기로 하여 기성의 체제, 요컨대 아버지의 문화와 질서를 전복하고자 하는 욕망에 휩싸여 있었다. 가장 급진적인 움직임이었다.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도 예외가 아니었다. 흑인 인권운동, 반전운동, 스튜던트 파워, 히피로 대표되는 반문명 운동은 뉴욕에서부터 LA까지 전미 대륙을 횡단하던 바였다. 우디 거스리, 피트 시거, 피터 폴 앤 메리, 존 바에즈, 밥 딜런 등 전설적인 포크 뮤지션들이 반전가를 불러대던 때도 그 즈음이었으며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절규하던 짐 모리슨, 야성적인 보컬과 난폭한 기타 연주로 라이브 현장을 뒤집어 놓던 제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등의 록 뮤지션이 새로운 음악 문법을 토해내던 때도 바로 그 즈음이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그런 기성 질서에 반란하는 청년 세대들의 음악과 세계관적 지향이 집중적으로 모여들어 건설한 꼬뮌이었다. 그들의 뒤에는 신세대 마르크스주의자 마르쿠제가 사상적 후견인으로 서 있었다. 그가 쓴 '위대한 거부', '에로스와 문명'은 그 청년들의 교과서가되어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혀 다니곤 했다. 일본 현대사의 최대 저항 운동 세력이었던 전공투, 전학련이 맹위를 떨치던 때도, 체 게바라와 카사트로라는 키 큰 청년이 성공시킨 쿠바 혁명을 전범으로 한 제 3세계 민족 해방운동이 급격한 도미너 현상을 보이던 때도 바로 그 즈음이었다.
70년대 한국 청년 문화는 바로 그런 세계적 움직임의 진앙에서 방사되어 나오던 에너지를 풍문으로 접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청년들도 청바지를 입었으되 그 뒷주머니에 '위대한 거부'는 꽂혀지지 않았으며 통기타를 치되 반전, 반문명의 철학은 읊조리지 못했던 터이다. 오직 김민기만이 그랬던 것이다. 예의 청년 문화의 상징, 이를테면 청바지, 생맥주, 통기타가 모두 내용은 부재한 단지 표피적인 흉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청년 문화가 그런 표피성이 상업성과 결탁한 결과라고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시 청년 문화는 한국 문화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아주 색다르고 다채로운 풍정을 그려 보이던 과정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동시에 엄숙주의 유교 이데올로기, 군사 문화의 억압성과 경직성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에 일견 최초의 자유주의적 취향과 스타일을 제시한 문제적 문화 형태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인지 박정희의 군기잡기 정책에 의해 청년 문화는 한데로 추방되어 갔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학을 중심으로 더욱 급진적인 문화 운동이 서서히 개화하기 시작했다. 70년대가 바로 그 때였다. (이성욱 / 문화비평가)

말하자면 지금 유령이 떠돌고 있다. 70년대는 우리 주변을 시간의 문턱 너머로 슬그머니 넘어와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보수반동적인 것만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그 알 수 없는 향수가 우리 모두를 내리 누르고 있다. 갑자기 추락하는 문화 담론(들)의 죽음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토대는 빠른 속도로 부서져 내리고 , 우리는 길을 잘 못 든것 같다. 대통령 후보(중의 하나)는 기꺼이 70년대로 돌아가기 위한 마스크를 뒤집어 쓰고 우리에게 유혹의 속임수를 사용한다. 세상은 사막이 되어가고, 신기루들은 여기저기 출몰한다. 그럼으로써 역사는 추억이 되어 가고, 신기하게도 추억 속에서 역사는 시뮬라크라가 되어 간다. 그 속에서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중의 추억으로서 시뮬라크라에(또는 그 반대?) 사로잡히는 것이다.
상황 1 : 70년대 영화라는 토픽의 보다 정확한 시간적 절단은 71년 유신과 함께 새로이 제정된 영화법으로 영화사들을 20개로 (축소)제한하고, 그들에게 외화 수입 쿼터를 하나씩 나누어 주고(영화에서 쿼터라는 말은 이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다), 이중 검열의 검열제도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75년 8월 15일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의 피살 사건 이후 일부 개정되기는 하였으나 그 기본 골격에서는 커다란 차이는 없다.
사례 1 : 조세희 원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영화로 옮기면서 그 무대를 염전 지대로 바꾸도록 시나리오 단계에서 권로(를 빙자한 개작)를 받았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공장 지대가 나오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그 이유를 첨부하였다.
사례 2 :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영자가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장면 차 창 바깥에 구로동 공단이 보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검열에서 심의되었고(는 듣기 좋은 말이고 그냥 가위질로 잘려 나갔다), 감독과 제작사는 혹시 이 장면에서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정보부(오늘의 안기부)로 불려나가서 조서를 작성하였다.
사례 3 : 황석영 원작소설 '삼포 가는 길'의 영화 마지막 장면은 자신의 고향이 수몰지구가 되어 버린 앞에서 허탈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삭제되었고, 다른 감독에 의해서 마지막 장면은 다시 촬영되어 다른 장면으로 바뀌었다. 이 바뀐 장면은 댐이 건설되어 있는 '새마을'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의 롱 쇼트이다. 롱 쇼트인 까닭은 원래의 연출자인 이만희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의 연출하는 장면에는 출연할 수 없다는 김진규씨의 고집 때문이다. 이만희 감독은 이 영화를 편집 도중에 유고하였다.
사례 4 : 하길종 감독은 최인호 원작 꽁트집 '바보들의 행진'을 영화에 옮겼다. 이 영화는 '대학생들의 퇴폐적인 모습'을 담았다는 이유로 40분이 잘려나갔다. 이 영화를 하길종 감독은 몰래 첫 날 첫 회 상영에 '무삭제'판을 상영하였다. 당일 상영은 중단되었고, 문화공보처(지금의 문체부)에서는 네가(negative)원판을 잘라 재심의하고 심의된 필름은 폐기처분하였다. 이제 이 영화의 원판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상황 2 : 그런데 이 모든 위기를 보여주는 미스테리 소설과도 같은 'X 파일'이 있다. 이것은 아직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로 잔뜩 묶여있는데, 이 이야기의 담론주변(의 생산자들과 소비자들 사이의 내재적 인접 관계)에는 70년대 영화의 위기(라고 불리울 만 한 시대정신)가 담겨있다. 이 담론의 중심에는 신상옥 감독이 있다. 이 담론은 공장(모든 정신분열증적 담론은 공장처럼 생산된

다는 가따리의 말을 빌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무대(차라리 푸코적 틀을 빌려)에 가까운데, 이것을 만들어 내는 장치는 분단 모순이며 이 장치를 가리는 미장-센은 김대중이다. 유신 정부와 일본, 그리고 미국의 CIA로 이어지고(있다고 가정되는 상상적 구도를 따라가며) 그 사이에 아슬아슬하게(김정일이라는 알레고리로 대체되어 있는)북한이 걸쳐 서 있다. 우리는 아직도 신상옥이 왜 북한에 갔는지 알지 못한다. 납치라는 발표가 있지만, 그 반대의 소문도 꾸준하게 따라다니고 있다.
상황에 관한 소문 : 70년대에 불현 듯 사라진 신상옥 감독은 정신 병원에 감금되어 있다고 알려졌다. 이 소문은 매우 구체적인 사유와 그 증인을 제시하며 인구에 비밀리에 회자되었다.
'비밀리'라는 표현에 대한 사례 : 하길종 감독은 아무리 가득찬 술집에 가서도 항상 가장 좋은 자리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비결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큰 소리로 "박정희는 개새끼다"라고 외치면 사람들은 5분 내에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이것을 속담으로 '못된 놈 옆에서 벼락 맞는다'라고 하고 당시 법적 유권해석으로는 '유언비어 유표 동조 및 불법집회 가담'에 해당(이것은 농담이 아님!)되었다.
상황과 사례에 대한 가설 : 이것은 전적으로 정부가 문화 담론의 통제를 넘어서 문화 유언비어의 생산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경우가 될 것이다 (통제를 넘어서면 이제 정부가 담론의 생산적 주체가 되는 것은 이미 호르크하이머가 파시즘을 연구하면서 내세운 가설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로부터 아래로의)관계는 그 과정이 일종의 교육의 과정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반복 학습의 효과를 가져오며 제도를 넘어서서 사회적 계몽의 타락한 구조를 집단이 아닌 그 개인의 태도 속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일시적으로 정부의 체제가 바뀐다고 해서 그 일정한 기간동안(심지어 여기서 그 '일정한'기간이란 무려 20년에 이르는 시간이다)반복되어 온 일상속의 제도적 억압을 '망각'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억압은 시간 속에서 추억이 되고, 추억은 문화를 만든다. 그 과정에는 70년대를 아무런 가치 판단할 수 없었던 나이에 보내고, 80년대 이후에 비로소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이성적으로 비판함으로써 경험과 판단이 서로 유리되어 있는 세대가 90년대에 문화 담론의 중심에 이르자 이제 이 모든것은 이상하게도 추억의 이론화에 이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영화도 역시 포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90년대 영화 속에 담겨있는 자기 검열의 한계는 70년대가 몸 속에 각인시켜 놓은 것이다. 그래서 그 몸은 정치적 공포와 제도적 폭력의 구현이 구체화 되어 나타나는 모습을 알고 있다. 그 몸은 그것을 70년대의 아주 어린 시절 온갖 소문과 80년대의 구체적인 증언 속에서 교육받은 것이다. 그 몸을 떨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역사를 추억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반동적 기계 장치이다. 우리들의 영화가 70년대에 개입하는 순간 사로잡히는 얼핏 드러나는 그 공포와 불안은 우리를 객관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이성의 자리로 데려가는 대신 그저 공포와 불안, 절망으로 그 시대가 지나가 버린 듯한 착각에 대한 안도의 한숨만을 쉬게 만든다. 기억은 물질이다-베르그송의 말이다. 그 물질은 언제나 이데올로기의 일부이다. 그리고 이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하는 것이다. 알뛰세르의 말이다. 그것이 영화속의 70년대가 구현하는 방식이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역사의 복수인가? (정성일/ 월간 키노 편집장)

............................................................................................90년대 창간된 문화 잡지들
검증되지 않은 현상 진단 :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 → 젊은 사람들은 '글'을 안 읽는다 → 대학생도 '교재'말고는 안 읽는다? 물론 청년들이 활자를 완전히 기피하는건 아니다. PC통신 같은 미디어는 여전히 활자중심의 문화다. 그렇지만 '진지한'글들은 非인기 미디어로 전락한 지 오래다. 최근의 경기침체에 따른 단기적 현상은 아니다. 더군다나 그림이나 사진도 없이 두툼한 부피와 무게를 가진 '책'을 손에 집어들기는 힘들다. '잡지'는? 1990년대 들어 창간된 잡지들 중 성공을 거둔 경우는 고급의 지질 위에 해상도 좋은 컬러 사진 중심으로 편집된 것들이다. 거기 실린 글들은 심도 놓은 이해를 위한 메시지 보다는 활자체 '폰트'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이미지가 우선한다. '진지한 잡지'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던가. 1960년대 후반부터 [사상계]가 한 시대를 풍미했고, 1970년대 중반부터는 문학 계간지인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이 흥미로운 논쟁을 유발하면서 잡지게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 했다. 지금 다시 보면 조악한 지질의 종이 위에 식자 인쇄이고 내용과 문체 역시 딱딱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학생들은 이런 잡지들을 가방안에 넣고 다니면서, 시와 소설과 눈문 등'지적 담론'들을 읽고 이해하면서 자신의 삶의 중요한 좌표로 삼았다. 물론 대학생들이 이 잡지들만을 읽었던것은 아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선데이 서울]과 [주간 경향]같은 '저질 상업 잡지들'도 애독되었다.두 종류의 잡지에 실린 이질적 담론들, 즉 진지하고 학술적인 담론과 천박하고 상업적인 담론들 사이의 거리는 형식적으로는 매우 컸지만 실질적으로는 보완적이었다. 장발을 하고 당꼬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둘러멘 이들의 가방 속에 들어 있던 [민중과 지식인], [전환시대의 논리], [오적]... 그때를 아십니까. 이는 [학원]과 [여학생]이라는 '사춘기의 모든 것을 가르쳐 준 잡지'들을 읽고 자라난 세대들(아! 갑자기 왠 '아들과 딸'분위기냐...)이 성장하면서 청년기의 욕망을 분열적으로 분출했던 통로로 보인다. 즉, 한편으로는 어른이 되기를 준비하면서 욕망을 진지하고 성숙하게 승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히 젊은 상태로 머무르면서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상태로 탈승화시키는 것. 어쩌면 이 점이 한국의 1970년대의 아이러니일지 모른다. 흔히들 1970년대 대학 문화가 미국의 반 문화의 파장이 전달된 시기라고 말하지만, '욕망의 무한 분출'이라는 반 문화의 에토스는 우리 조건에서는 아직 낯선 것이었다. 미국의 반 문화운동은 상업적 대중 문화를 거부한다는 수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대중 문화의 지배적 형태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반면 그때 여기에서 대중 문화는 아직까지 '천박하고 저질적인 상업적 연예'라는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진지한 담론의 대상으로부터 배제되었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체제에 반항했던 이들의 '의식'에도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문학과 지성]에 소설을 실었던 최인호, 조선작 등의 '상업주의 소설'을 둘러싼 논란은 이런 균열을 반영했다. 대중 음악이나 영화가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음은 '하물며'다. 그렇다면 1990년대는 그때의 상황이 비로소 자의식 속에 포착된 시기인 것인가. '전문 비평'이라는 형태로 대중 문화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등장하고, 그에 발맞추어 '1970년대 리바이벌'이 이루어지는 현상 말이다. 한 예를 들어 음악 평론에서 '록 르네상스'를 주도하는 이들은 분명 3 - 40대 인물들이다. (록 = 중년의 내파된 저항의 추학(醜學?)그런데 시간은 과거를 여유있게 회고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제 어느 정도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대중 문화에 대해 지지한 담론을 제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회고를 자극할 뿐이다. 따지고 보면 대중 문화란 '여가'의 영역에 속하고, 여가에 대해서까지 진지한 분석을 해대는 것을 좋아할 이는 많지 않다. '대중 문화'를 다루는 [리뷰]는 '고급 문화를 다루는' [창작과 비평]의 1990년대적 등가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은 펜으로 줄치고 읽는 '노동'을 요구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에서 불운해 보인다. 그보다는 차라리 소파에 누워서 볼 수 있는 [씨네 21]이 시대의 징후에 어울린다. 현재 책이라는 미디어는 음반, 비디오, 컴퓨터 게임, PC통신, 인터넷 등의 여가 수단과 힘겹게 겨루고 있다. 더군다나 정치	적 억압 '때문에(!)' 매일매일이 휴일같았던 1970년대의 대학생들과 날로 꽉꽉 조여드는 일상 속에서 휴일마저 평일 같은 1990년대의 대학생들의 노동 및 여가의 조건은 너무도 다르다. 좀 더 편하게 말하면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의 구분은 너무나도 선명해지고 있다. 여가의 시공간을 점유하기 위한 싸움은 여전하지만, 그 싸움의 양태는 참 많이 변했다. '독해'보다는 '구경'이 좋다? 그게 아니라 이전에는 양면적으로 발산하는 것으로 족했던 욕망 이 이제는 보다 '멀티'해 진 것이다. 어쩌면 이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된 '지식의 위기'를 드러내 줄 지 모른다. 심층적 이해를 위한 지식의 기능은 표층적 관찰을 위한 정보의 기능에 자리를 양보했다. '앎'의 양태도 변화한 것일까. 그런데 변했든 말든 '앎의 의지'는 여전하고 더욱 강력하다. 이전에는 천박하고 상업적이라고 간주되는 정보지의 포맷을 지닌 주간지(혹은 월간지)의 애독자들이 '잘난 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세상이 진지하지 않아질 수록, '나만은 진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커지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일회용품 활자 매체 중에서 자기가 선택한 것마저 일회용이라고 인정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모든 생각 자체가 자의식적 사색의 산물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1970년대(혹은 1980년대) 에는 어땠다'라는 말에 대해 '그래요.. 그래서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땐 그랬지"라고 노래하는 어떤 애늙은이 같은 대중 가수들도 있지만, 그들의 '그때'란 4-5년 전일뿐이다. 역사의 종언? 맞을 수도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역사는 '부단히'종언된다는 점, 즉 '끝없이'끝날 뿐이라는 점이다. 어떤 '진지한 사상가'가 말한 것처럼 하나의 순환이 끝나고 새로운 출구들이 여러 방향으로 열렸다는 사실의 확인 정도일 뿐... Anyway, struggles for fun and/or against boredom go on.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

설레발 떠는 세상이다. 희망의 구호가 악몽으로 바뀌고 다시 아쉬운 향수로 되살아나는데 '격동 30년'도 너무 지루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네 근대사는 엊그제 '군정종식'을 하고 오늘은 '위대한 박정희'를 찬양하는 깡뚱맞은 사관을 뽐내기에 이르렀다. 자고나면 무너지는 성장 문화의 각종 조형물들이 대부분 그 시절에 첫삽을 떴던 사실을 상기하면 골 때리는 정도가 아니라 골수를 파버리는 희대의 블랙코메디다.
문화라고 따로 떼어서 회상한들 짜증만 는다. 새마을운동 발흥기에 전국 초가를 허물고 시멘트를 쳐바르던 살풍경을 보고 대문호 펄벅이 한탄했다는 이야기는 내국인의 귀동냥간에도 못 미쳤다. 새마을운동은 '잘 살아 보세'로 집약되듯 가난한 국민의 국가적 화두로서 생존의 좌우명이었다. 문화혁명을 겪은 중국이 뒤늦게 새마을운동에서 배우자고 한다니 죽은 박정희도 국경을 넘어서 세계화를 실천하는 셈이다.
새마을 운동이 대체 뭣이길래 이럴까? 이른 아침께면 확성기에서 새마을 노래가 울려퍼지는 나라, 길거리 어디서든 국기 하강식에 맞춰 '동작 그만'과 함께 경례를 하는 시민들, 자정을 기해 인적이 사라지는 통행금지의 도시, 권력의 감시뿐 아니라 자기 검열로 초췌해진 표정들이 새마을운동의 '문화 유산 답사기'이다. 그 속내의 한자락을 들춰보건대 긴급조치 2호와 함께 유신 체제로 돌입한 1975년 이후의 대중문화게는 그야말로 불타는 쑥대밭이었다.
소위 '공연예술활동의 정화대책'을 발표해서 가요 2139곡, 팝송 1510곡을 무더기로 금지하는가 하면, 대마초 사건으로 줄줄이 엮더니 무려 2년간 대중 연예인 139명을 구속 또는 입건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알다시피 음반 끄트머리마다 건전가요라고 뻘줌한 노래가 실리던 시대가 '그때 그 시절'이다. 국민 총동원령이 발동된 터에 각하의 줄변덕에 따라 나라를 통채로 이리 쓸고 저리 쓸던 싹쓸이 문화야말로 새마을운동의 결정판이었다.
근래에 벌어지는 희극도 닮은꼴이다. 사창가를 강제 철거한다, 청소년 금지 구역이다, 몰래카메라로 '양심 가게'드라마를 연출한다. 이런 광경은 '새마을 건설'에 사로잡힌 국가적 망령의 재방송이다. 시쳇말로 까라고 할때는 언제고 이제와 뒤통수를 치니 공권력만 정신차리면 안되는 것 없는 오달진 세상이다. 그러니 여의도 방송사들이 안면을 바꿔 가수의 복장과 두발을 규제한다고 나서는

꼴은 위선이 아니라 알아서 기는 개떼 근성이다.
컬러 시대인 80년대로 채널을 돌리자니 흥건한 피빛에 어지럼증만 더한다. 광주가 그렇고 삼청교육대가 그렇다. 새마을운동이 전 국토 전 국민을 상대로 벌인 박정희식 싹쓸이라면, 삼청교육대는 만만한 놈 골라잡아 한갓진 데로 끌고가서 반 죽이는 전두환식 족치기였다.
당신은 혹시 본 적이 있는가? 밤 9시 TV 뉴스와 영화관의 대한뉴스에서 틀어주던 그 살떨리는 장면을? 머리칼을 민둥산처럼 밀린 사내들이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내고 일렬 종대로 늘어선채 목봉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외치던 '사회 정화'라는 구호를 들어는 보았는가?
삼청교육대는 지금도 쌩쌩 돌아가고 있다. 마광수, 장정일, 이현세등이 근자의 삼청교육대 입소자 명단이다. 누가 더 들어갈지는 모를일이고 당신에게는 구경꾼 노릇만 남았다. 혀를 차든 같이 욕을 해대든 느느니 삼청교육대의 방영효과이다. 한 명만 잡아서 족치면 나머지는 저절로 꼬리를 내리니 구차하게 새마을운동까지 벌일 필요도 없지 않는가? 이렇게 해서 대중문화 판에는 화려한 소비 껍데기와 고고한 문화담론만 덜렁거리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서상한 시절에 산다. 문민 정부와 선진국 환상에 눈멀어 지내는 동안 누적되어온 경고음을 무시한 건 비단 정치권과 재계만이 아니다. 대중문화계 종사자들과 그 수용층의 어리무던한 '편히 쉬어'자세도 참 녹록했다. 따라서 나라 살림이 IMF의 '법정 관리'에 들어간 이런 때에 새마을운동이나 삼청교육대를 떠올리는 건 지식인의 회고 취향을 넘어설 또다른 그 무엇이 안받침될 때에만 할만한 일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활개를 치는 것은 고정 간첩만이 아니다. 자로 반듯이 테두리를 그어놓고 그 바깥에 있는 대중문화에 번번히 강짜를 놓고 억지 춘향을 강요하는 이 나라 여론 주도층의 이중 잣대도 바로 이런 때에 칼춤을 춘다. 역사는 돌고 참고서는 수북히 쌓였으니 2천년대를 목전에 뒀다 해서 선대의 싹쓸이와 족치기 수법을 더 발전시키지 않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피식 헛웃음을 켜고 지나치지는 말자.
..................................................................김종휘 (팬진. 웹진 <공>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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