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 박준흠

"생각없이 걷던 길 옆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 나를 바라보던 하얀 강아지 이유 없이 달아났네 / 나는 노란 풍선처럼 달아나고 싶었고 / 나는 작은 새처럼 날아 가고 싶었네 / ...(중략)... / 달아났던 강아지 끙끙대며 집을 찾고 / 스며들던 어둠이 내 옆에 다가왔네" - <오후만 있던 일요일> (이병우)

85년에 발매된 새로운 대중음악의 출발을 선언하는 컴필레이션 음반인 우리 노래 전시회 1집에 <너무 아쉬워 하지마>를 수록하면서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어떤날은 당시 같이 음악 활동을 했던 일군의 무리들 중에서도 독특한 감성을 가진 뮤지션들이었다. 조동익, 이병우로 구성된 이 멀티플레이어 듀오 어떤날은 스튜디오 세션을 추구하는 기능적인 뮤지션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여린, 때로는 일탈의 감 정을 무섭도록 달콤하고도 조용하게 소근거렸던 뮤지션들이었다. 조동익은 음악 생활을 시작할 당시 조동진의 동생으로 소개가 되기도 했지만 그의 역량은 언더그라운드 포크계의 대부격인 그의 형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을 스튜디오 세션 초기 부터 쌓아갈 수 있었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실력과 감수성을 가진 아티스트였다. 비록 그가 자신에 대해서 말하길 "나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형에게서 받은 것이다. 형처럼 멋진 음악을 하면서 성공하고 싶었다. 내가 음악을 하겠다고 집안에 선언하였을 때 남들처럼 심하게 반대하는 분위기가 없었다. 오히려 나한테 관심을 보이면서 이것 저것 가르쳐 주었다. 그렇다고 책을 본다거나 음악에 대해서 연구를 하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나는 책을 보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거의 형을 졸졸 따라 다니면서 어깨 너머로 음악을 배웠고, 잘 모르는 부분은 계속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스스로 터득하였다"라고는 하지만 그는 김광민, 한상원, 정원영 (그리고 후에 이병우) 등이 국내 음악 환경에 좌절을 하고 버클리 음대 (이병우는 빈 국립 음대) 로 유학을 가 있는 동안 국내 레코딩 세션계에서 수많은 뮤지션들의 연주, 편곡, 작곡을 해 주면서 자신의 내공

을 쌓아 나아갔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는 80 년대가 배출한 가장 역량있는 세션맨이자 작/편곡자가 되었다. 그는 80 년대 초 친구의 소개로 향후 음악적인 동지가 되는 이병우를 만나서 어떤날을 결성하고 그들의 데뷔 음반을 86 년에 발표한다. 사실 데뷔 음반이 니왔을 때의 반응은 극히 미미한 편이어서 그들의 존재가 그나마 알려진 것은 89년 어떤날 2집이 나올 쯤 이었다. 당대를 대표하는 듀오로서 뿐만아니라 우리 대중음악계가 배출한 가장 걸출한 듀오의 데뷔 음반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이는 심히 부적절한 평가였다. 이는 상당 부분 자신들의 존재를 외부에 노출시키기를 꺼리는 그들의 성격 탓 (이병우가 스튜디오 세션에 관심을 가진 것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에도 기인하지만 이들을 알아보는 음악 매체도 전무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옥석을 가리는 혜안을 갖고 있으면서도 영향력 있는 국내 대중 음악 전문 매체가 아직도 없다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레코드 판매량으로는 전세계 10위권 안에 든다는 현실을 부끄럽게 만든다. 진중하게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기지 않는가?). 어떤날 데뷔 이전 85 년 들국화 l집 음반에 실리기도 했던 이병우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당시 들었던 사람이라면 "뭐 이런 노래가 다있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가요의 범주와는 전혀 다른 감성을 가진 곡들을 그들은 불렀다. 우리 노래 전시회 1과 들국화 1집을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한 그들은 86년 비로소 우리 대중음악계가 배출한 가장 섬세한 감정으로 노래하였던 듀오의 노래들을 세상에 공개한다. 타이틀은 조동익의 출생 년도 (1960) 와 이병우의 출생 년도 (1965) 를 표기한 어떤날 1: l960 · l965 이었다.

"창밖의 빗소리에도 잠을 못 이룬 너, 그렇게 여린 가슴 / 소리 없이 떠나간 그 많은 사람들, 아직도 기다리는 너 / 어둡고 지

루했던 어제라는 꿈속에서 어서 올라와 / 저기 끝없이 바라 볼 수 있는 하늘 있잖아, 저렇게 다가오잖아 / 그렇게 얘기해, 그렇게 웃어봐, 그렇게 사랑을 해봐" - <하늘> (조동익/이병우)

데뷔 음반에 실린 첫 곡 <하늘>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었고, 삶의 주변부에 자리 잡은 세세한 일들을 여린 감성으로 노래하는 뮤지션들이었다. 일상에서 무시되고, 놓치기 쉬운 것들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갖고 이것들을 자신들의 음악의 중심에 끌어들였던 그들은 '외모와는 다르게(?)' (이 글 시작 페이지에서 굳건하게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시길)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옴과 동시에 가슴 시림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여성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기형도의 글에서 받는 느낌과도 일면
같다.


"걱정스러운 얼굴 하지마, 두려워도 하지마 / 수없이 다짐하고 또 허물어 온 푸른 꿈 위해 / 오늘도 조용히 일어나 혼자 걷는 너에게 나는 이렇게 부르지 / 저 파란 하늘 위에 날으는 법을 배우는 작은새" - <그 날> (조동익)


이들을 당대의 세션 연주자로서 자리매김시킨 이 곡에서는 이병우의 매우 훌륭한 일렉트릭 기타 솔로를 들을 수 있다. 왜 기타리스트 박청귀가 80년대 말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가장 가능성있는 후배 기타리스트로 이병우를 지적하였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게 하는 이 곡은 그의 연주 경력에서도 가장 빛나는 곡이기도 하다. 사실 그를 생각할 때 안타까운 점은 이렇게 열정적인 필 (feel) 로 연주하는 것도 가능했던 그가 90년대에 와서 스스로 자신의 필을 제한하려고 하였는지에 관한 점이다. 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연주를 심화시킬 수는 없었는지를 묻고 싶다. 그리고 그들은 데뷔 음반을 발표한 해에 시인과 촌장 l집에 베이스 (조동익), 기타 (이 병우) 세션에 참여함으로써 사실상 정식 스튜디오 세션을 하기 시작한다. 뒷 페이 지에 나올 그들 (주로 조동익) 의 세션 참여작을 보면 알겠지만, 86년 이후 그들의 세션 참여작은 80년대 중반- 90년대 중반 우리 나라 대중음악의 주요 흐름을 보여주는 연대기와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여기에 함춘호 세션작까지 넣으면 '거의'자를 빼도 된다). 우리 레코딩 세션 역사를 보면 크게 l, 2, 3 세대 세션맨들로 나뉘어지는데, 보통 l 세대를 이봉조 악단 등과 같은 연배의 뮤지션들로 보고, 2 세대에는 조원익 (베이스, 그 역시 조동진의 동생이다), 안기승 (드럼), 이호준 (키보드) 등이 있었고, 3 세대 세션맨들로는 조동익, 함춘호 (기타), 손진태 (기타), 박청귀 (기타), 김광민 (키보드), 김희연 (드럼) 등을 얘기한다. 89년 그들의 2 집이 나오기 전까지 조동진 1, 2 집 (86, 재녹음), 따로 또 같이 4집 (87), 김두수 l집 (87), 김현식 4집 (88), 최성원 l집 (88) 에

참여하여 조동익과 이병우는 각자 세션맨으로서의 지명도를 획득해 나갔고, 그리고 1집보다는 기능적으로 더욱 숙련되었음 을 보여준 어떤날 2 를 발표한다.

"은근히 자라난 나의 손톱을 보니 / 난 뭔가 달라져가고 / 여위어 가는 너의 모습을 보니 / 너도 뭔가..." - <출발> (이병우)

이병우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자신의 이야기는 "어렸을 때부터 스튜디오 세션맨 이 되고 싶었다. 남들 앞에서 기타 치는 것을 되게 싫어했다. 또 남들 앞에서는 제대로 연주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스튜디오 일을 하다보니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게 과연 이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 레코딩은 시간에 쫓고 또 투자보다는 히트에 연연하기 때문에 세션이 연주라기 보다는 단순 시간 노동에 가깝다"였다. 이병우는 이 당시부터 자신의 내밀한 음악을 더욱 확장하기 위하여 유학을 꿈꾸었는데 김광민, 한상원, 정원영 같은 유학 l세대 뮤지션들이 미국의 버클리 음대를 택하였다면 그는 클래식의 본고장 오스트리아의 빈 국립 음대로 유학갈 준비를 한다 (2집을 발표한 그 해에 그는 솔로 l집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 항해를 발표하고, 이 음반 이후에 유학을 떠난다). 이 곳을 택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일렉트릭 기타보다도 '소박하고 섬세하며, 나무에서 울리는 소리가 마음에 든다는' 클래식 기타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출발>로 시작하는 2집은 그들의 달라진 악기에 대한 취향을 엿보게 하는 앨범이었다. 일렉트릭 기타 연주자로 팻 메시니를 (클래식 기타리스트로는 데이빗 러셀) 좋아하였던 이병우는 팻 메시니와 같은 기타 신서사이저를 자신의 연주에 동원을 하고, 조동익은 자신의 본 악기인 베이스와 간간이 연주하던 키보드 외에도 컴퓨터 프로그래밍 (미디) 에도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커다란 빌딩 사이로 / 오늘도 어제처럼 어설프게 걸린 하얀 초생달 / 이맘 때 쯤이면 별로 한 일도 없이 / 내 몸과 마음은 왜 이렇게 지쳐 오는 걸까" - <초생달> (조동익)

<초생달>은 어떤날로서는 마지막 역작이 되었고, 이 노래 말마따나 몸과 마음이 지쳤는지 아니면 같이 하기에는 이미 그들 각자의 음악관이 달라쳤는지 이병우가 자신의 독집 음반을 내면서 자연스럽게 어떤날은 '저기 끝없이 바라 볼 수 있는하늘' 로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창밖의 빗소리에도 잠을 못 이루는 그렇게 여린 가슴' 을 갖고 있었던 어떤날이 우리에게 남겨 놓은 이야기는 "어둡고 지루했던 어제 라는 꿈속에서 어서 올라와. 그리고 그렇게 얘기해. 그렇게 웃어봐. 그렇게 사랑을 해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