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sces Iscariot 시절의 펌킨스 : 좌로부터 지미 챔벌린, 다아시, 제임스 이하, 빌리 코건
 
 
 
 


▶ 이번 앨범에 대한 전반적인 접근 방식은 어떤 거였습니까?
코건 음, 기본적으로는 음악적으로 좀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자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면에서의 ‘록’적인 스매싱 펌킨스였기 때문에 이제는 뭔가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거였지요.
▶ 듣기로는 이 앨범이 이 씬에서의 최초의 진정한 포스트-그런지 앨범이라고 당신이 말했다는데, 맞습니까?
코건 네.
▶ 그렇다면 그 말에서 당신이 의도하고자 한 의미는 정학히 뭐였습니까? 당신의 관점에서?
코건 내가 봤을 때 1995년 경부터 지금 1998년 사이에는 어떤 특정한 음악적 흐름, 그런지라고 불리는 어떤 대세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그런지에 머문 적이 없는

데 사람들은 모두 스매싱 펌킨스를 그런지로 불렀지요. 그 관점에서는 뭐든지 그런지로 불릴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95년과 98년사이의 음악을 그런지라고 지정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의 Adore는 그런지가 아닌 최초의 음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그리고 그런지로 의심받지도 않을 첫번째 음반.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겁니다. 이젠 그만하면 됐다고, 이제는 로큰롤의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해도 좋을 때라고. 그리고 나는 Adore로 하여금 그 사실을 말해 줄 첫번째 앨범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보세요, 록의 모든 게 ‘에너지’였죠. 파워와 에너지가 이렇게 계속 계속 계속 계속 끝없이 증폭되어 나가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 나갈 수는 없습니다. 무리예요. 언젠가는 가라앉지요.
▶ 그럼 그 진정한 최초의 포스트 그런지라는 것은 이번 앨범에서 사운드적인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어떤 전반적인 당신들의 태도(attitude)에 관한 것이었습니까? 어느 쪽에 적용된 개념입니까?
코건 애티튜드쪽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기존처럼 전부가 다 록은 아니라는.. 그러니까 음악은.. 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미국에서는 상당히 많은 ‘따라하는’ 밴드들로 넘치는 때였습니다. 너바나, 스매싱 펌킨스, 펄 잼등을 흉내내는..
▶ 하지만 당신들은 따지고 보면 지금 추종자들쪽은 아니잖습니까. 오히

려 리더군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그렇게 시니컬할 필요는..
코건 아뇨. 실제 일어난 상황을 보면. 좋습니다, 그럼 예를 들어, 만약 여기 열 다섯 살 짜리 미국애가 라디오를 듣는데 스매싱 펌킨스라는 밴드와 스매싱 펌킨스처럼 연주하는 밴드, 혹은 너바나와 비슷한 밴드 사이의 차이를 거의 구별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뭔가 새로운 걸 해야만 하는 시점인 겁니다. 그래서 우린 다른 어느 누구도 실질적으로 해 본 적 없는 새롭고 다른 걸 시도해보고자 했던 겁니다. 그건 우리가 꼭 리더라서 그렇다는 소리는 아녜요. 사람들이 우리가 왜 이런 걸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뒤에 자리한 이런 동기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 첫 싱글인 <Ava Adore>에서 ‘Ava’가 누굽니까?
코건 그냥 내가 만들어낸 이름이지 실재하는 대상은 아닙니다.
▶ 전작 Mellon Collie 앨범은 다이내믹하고 강렬했는데 이번 Adore는 주로 보다 멜로딕하고 느리고 스무스한 느낌입니다. 이렇게 스매싱 펌킨스가 이번에 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코건 변했다라.. (웃음) 우리 음악은 우리가 지금까지 변함없이 해 온 것들의 (일관된) 정신(spirit)이예요. Siamese Dream의 <Disarm>은 어떻습니까? 다르죠. 매우 하드록적입니다. 하지만 Mellon Collie의 <1979>는? 이건 그것과는 또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건 같은 정신입니다. 하드록밴드인 스매싱 펌킨스가 이제는 그렇지 않게 변했다 식의 문제가 아닌 겁니다. 언제나 우리 음악 속에 있어 왔어요. 그리고 Adore는 지금까지처럼 단순히 록 적인 부분이 그렇지 않은 부분의 카운터파트가 되도록 하기 보다는 우리 음악의 조용한 면 쪽으로만 좀 더 파고 들어가 본 것 뿐이고.
▶ 하지만 무슨 이유로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겁니까? 이전까지 해 온 것들에 스스로 지겨워졌다든지 혹은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이 발동했다든지..
코건 음..
▶ 그러니까 이렇게 만든 진짜 의도를 알고 싶다는 말인데요.
코건 ‘진짜’ 의도를 알고 싶으시다고요? (웃음)
▶ 왜냐면, 나는 이 앨범이 스매싱 펌킨스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정된 시각이나 견해에 대한 어떤.. 그러니까 뭐랄까.. 당신들의 굉장한 농담이거나, 혹은 굉장한 엿먹임(a bib fuck-you)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코건 정답입니다. 사실이예요. 이 앨범은 굉장한 ‘fuck-you’입니다. 하지만 사실 지금까지 우리의 코든 것이 그랬습니다. Gish는 모두가 하드 록 음악을 더 이상 할 수 없을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fuck-you였고, Siamese Dream은 그런지가 옷 맵시 형편없는 애들이나 하는 음악이며 단지 농담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fuck-you였고, Mellon Collie는 우리가 흔해빠진 또다른 그런지 밴드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우리의 굉장한 fuck-you였어요. 그리고 Adore도 그런 맥락에 준한 또한번의 fuck-you인 거지요. 우리는 언제나 우리 식대로 말해 왔습니다 - 우리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낫다고. 다른 어느 누구보다 하는 일도 더 많고 하는 연주도 더 많고 할 말도 더 많고 어느 누구보다도 넓고 빠르고 깊고 시끄럽고 그 모두를 다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건 언제나 모두에 대한 fuck-you가 되어 왔죠. 거의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스매싱 펌킨스가 뭐랄까, 지나치게 심각하고 드라마틱한 록 밴드라고 말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그 반대죠. 그렇게 지나치게 심각한 것도, 드라마틱한 것도 아닙니다.
▶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뭔가 새로운 것을 입증하고 싶습니까?
코건 네. 왜냐면 나는 아무 대가 없이 공짜로 주어진 건 거의 없었다는 생각이거든요. 지금까지 우리가 공짜로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판 음반은 지금까지 전부가 각각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그동안 우리에 대해 쓰여져 온 이야기들은 모두 우리가 얼마나 끔찍


하고 형편없고 미친 놈들이고 말도 안되는 비기능적인 집단인가 등등 뿐이었죠. 우리가 가진 건 뭐든 적의를 불러일으켰던 겁니다. 글쎄, 어떤 의미에선 아무 것도 공짜로 얻어지는 게 없기 때문에 항상 무언가를 입증해야 한단 생각이 드는 걸겁니다.
▶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소리들도 Siamese Dream 이후엔 거의 바뀐 편 아녜요?
코건 그래봤자 두번 정도겠죠. 나 자신도 조금은 바뀌고 있다고 생각은 했었고 이번 Adore는 아마보다 확실할 겁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은 여전히 하나도 바뀐 게 없어요.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건 지미 챔벌린이나 약물 사건, (얼마 전 있었던 투어 멤버의) 죽음 같은 것들 뿐입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나한테 커트 코베인에 대해 물어 오지요. 커트 코베인은 4년 전에 죽었고 나는 그것에 대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데도. 나로서는 일단 그래요. 어떻게 생각하면 음악이 전부가 아닌 이 세상에서 음악만이 전부인 밴드가 바로 우리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마 나는 음악만이 관건인 완전히 다른 별에 사는 사람일지도 모르죠.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별, 이 세계는 음악에 대해 별 생각이 없습니다. 이 곳에서 음악은 마치 영화 처럼 또 다른 포맷의 오락으로 간주되고 이런 상황에서 록 스타란 것은..
▶ 그러면 당신은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듭니까? 여기 이 별? 아니면 당신이 사는 그 별?
코건 내 별요. (웃음)
▶ Adore에서는 맷 워커와 맷 케머론, 조이 워론커 세 명이 드럼을 쳐 주었는데요, 전 멤버인 지미 챔벌린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이하 그 중 어떤 드러머도 지미와 별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지미는 10년동안 우리 드러머였고 말하자면 밴드 사운드의 일부였지요. 그에 비하면 밴드와 커뮤니케이션이 충분치 못한 점은 있었지만, 어쨌든 그들도 모두 훌륭한 드러머들입니다.
▶ 연주 질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말입니까?
이하 네. 그들 모두 다 그랬어요. 잘 하는 연주인들이죠.
▶ 오늘 공연엔 누가 드럼을 칩니까?
코건 케니 애러노프.
▶ 당신들의 음악은 지금 변했습니다. 그럼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엔 어떤 음악이 나올지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그러니까 40세가 되는 시점에는?
코건 (웃음) 아마 이렇지 않을까요? (양 손을 들며 귀신 울음 소리 비슷하게 흉내낸다) 우-우-우-우-우.. (좌중 폭소) 공상과학물 처럼.
이하 그때는 아이들이 샘플러나 턴테이블과 함께 하드록을 할 것 같아요. 지금벌써 그런 움직임도 있고.
코건 기타 부분에 샘플러는 이제 그만.
이하 하지만 나도 그런 곡 써 보려고 한 적 있는걸.
▶ 얼마 전까지 한국의 어느 대학에서 스매싱 펌킨스가 공연을 할 예정이었는데 취소되었다는 루머가 파다했었는데요,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코건 한국에서 공연을 할 일반적 가능성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만, 당시 처음으로 한국 공연을 위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쪽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성사되진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장담하건대 앞으로 2년 안에는 분명히 한국을 갈 겁니다. 아직 가 보지 못한 나라 중에 우리가 가 보고 싶어하는 곳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오는 9월엔 다시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에 Adore는 약 한 달 정도만 투어 일정을 잡아놓은 상탭니다. 해서 지금은 공연 장소 선정을 상당히 신중하고 까다롭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죠.
▶ 9월에 들어간다는 그 새앨범은 컴필레이션 같은 겁니까 아니면 오리지널 신보입니까?
코건 오리지널 신봅니다.
▶ 한국에서 공연할 때 대학 강당에서 할 생각이 있습니까?
코건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장담은 못 하겠어요. 투어하는 동안은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을 해 보고 싶지만 지금으로선 구체적으로 그렇다 아니다로 말을 못 하겠네요.
▶ Siamese Dream 등에서 당신은 멜로트론을 썼는데요, 그렇게 한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코건 무디 블루스. 그때 무디 블루스가 우리 집에 왔었거든요. (웃음) 와서는 멜로트론 치라고 막 강요했죠. 난 하기 싫다고 울었는데도. (웃음)
▶ 하지만 당신 집에 초대된 건 비틀즈 아니었어요? <Pug>의 인트로는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연상시키던걸요.
코건 하지만 나는 게리 뉴먼이라고 생각했는데. (웃음)
▶ 이하에게 묻겠습니다. 다아시와 함께 스크래치(Scratchie) 레이블을 시작하게 된 건 어떻게 된 경위입니까?
이하 그건 나보다 다아시쪽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형부(아니면 시동생?) 제레미, 그리고 그의 친구인 애덤 등이 함께 처음 일을 시작했지요. 좋은 인디 밴드들을 위한 레이블을 만들자는.
▶ 당신도 비즈니스 일을 맡고 있는 겁니까?

이하 네, 하긴 해요. 하지만 전업 비즈니스맨은 아닙니다.
▶ 스크래치 레이블 소속의 아티스트는 어떤 밴드들이 있습니까?
이하 많아요. 풀플레지(Fulflej), 마이크 래드(Mike Ladd), 파운틴스 오브 웨인(Fountains Of Wayne), 그리고.. 폰들리(Fondly)라는 밴드도 있고..
▶ 앨범 배포는 어떻게 합니까?
코건 이하 차 트렁크에서 직접.
이하 내 차로 오세요. (웃음) 유럽쪽에는 계약한 회사들이 몇 군데 있고, 미국쪽은 아직 배급망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 매번 앨범을 만들 때, 스매싱 펌킨스의 머리 속에 팬들은 얼마만큼 중요합니까? 그러니까 음악을 만들 때 당신의 우선순위에서 팬들의 위치는 어디쯤이냐는 건데.
코건 첫 번쨉니다.
▶ 진심입니까?
코건 물론. 왜 그러시는 거죠?
▶ 글쎄요, 난 언제나 당신이 음악을 만들 때 당신 자신에게 가장 먼저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웃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코건 (웃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음.. 그러니까..
(잠시 침묵) .. 나도 모르겠어요. (미소지으며) 어쨌든 난 동의하지 않겠습니다.
▶ 빌리, 당신은 스매싱 펌킨스 앨범들 프로듀스에 게속 참가해왔는데요, 앨범 프로듀스 시에 가장 난점은 무엇입니까?
코건 가장 힘든 점은 아무래도 연주자이면서 동시에 판사여야 한다는 것이죠.
▶ 다른 멤버들과 의견 차이가 있을 땐 어떻게 해결합니까?
코건 치고 박고 싸웁니다.
▶ 지는 사람은?
코건 내가 언제나 이깁니다.
▶ 언젠가 부치 빅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을 때, 그는 Siamese Dream 앨범이 자신이 만든 앨범 중 가장 힘든 것 중 하나였다고 하던데,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코건 술을 많이 마셨어요. 부치 그 사람은..
▶ 투어를 할 때 연주곡 목록은 어떤 식으로 결정합니까?
코건 우리를 알고 있는 팬들이 듣고 싶어하는 곡과 우리를 잘 모르고 처음 우리 공연에 오는 사람들이 들을 곡을 서로 잘 안배하려고 합니다. 그 두 층 모두를 동시에 끌어들여야 하지요. 사실 오늘 공연에 오시면 알겠지만 처음 8-9곡은 아마 거의 Adore에서 선정될 겁니다. 그 동안엔 그 어떤 Siamese Dream 곡도 Mellon Collie곡도 안 나올 거예요.
▶ 앨범이 이렇게 상당히 다른 사운드기 때문에 이번엔 그 어느 때보다도 무슨 곡을 연주해야 하는가를 정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균형을 맞출 생각입니까?
코건 우리로서는 Adore 라이브의 좋은점이 뭔가 부드러운, 꿈 같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일부러 고출력인 시끄러운 사운드를 만들어 낼 필요가 없이 온화하게 분위기가 바뀌어가는. 마치 차분한 보트여행 처럼.
▶ 하지만 오늘 밤 연주지인 부도칸, 즉 그런 대형 공연장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꺄아거리며 열광하기를 더 바랄 것 같지 않아요?
코건 관객들에게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미리 편안하게 주무실 수들 있게. 우리 연주로 아주 약간 깨워드리긴 하겠지만.
▶빌리 당신의 작곡 실력은 어떤 식으로 진화해 왔습니까?
코건 연습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렇게 호모 에렉투스에서 시상제 수상 후보로까지 진화한 셈이죠.
▶ Adore의 맨 끝 곡 <17> 말인데요, 부클릿에 따르면 이 숫자는 여러 가지 다른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17의 의미는 뭡니까?
코건 내 행운의 숫자입니다.
▶ 어떤 연유로?
코건 내 생일이거든요.
▶ 인터뷰하러 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 스탭으로부터 당신들이 음악 외의, 그러니까 가십 같은 질문은 가급적 피해달라고 했다는 부탁을 들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이 두렵습니까? 말하자면 어떤 질문이 당신이 받기 꺼리는 질문이길래..
코건 (스탭을 가리키며) 직접 물어 보시죠. 그게 뭔지. (웃음) 두려워하는 건 없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다른 것보다 음악에 좀 더 집중해 주기를 원했던 것 뿐.
▶ 머리는 왜 민 겁니까? (좌중 웃음)
코건 (정색하며) 아뇨,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이러기 시작한 건, 커트니 러브와 헤어지고 난 직후부터였습니다. (그런데 시기가 안 맞지 않나? - 역자 주) 너무 우울하고 슬퍼서 머리를 밀어 버렸죠. 그리고 그 때는 약도 정말 많이 하고 있었고.
▶ 지금은 당신의 헤어스타일이 편합니까?
코건 헤어(머리카락)가 아예 없는데 헤어스타일이 편할 게 뭐 있겠습니까.
▶ 다시 기를 생각은 있습니까?
코건 아뇨.
▶ 새앨범이란건 어떤 건지..
코건 지금 곡을 써 둔게 좀 있거든요. 7곡 정도.
(이 사이 질문에 잠시 공백이 생기자 빌리, 손바닥을 마주치며 웬일로 조크를
시작) 자, 뭐든지 물어 보세요! 어서어서! Come On! More gossip! (웃음)
▶ 스매싱 펌킨스도 인디에서 시작한 밴드인데요, 현재 미국의 인디 레이블들과 그쪽 비즈니스 전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코건 물론 인디 레이블들은 신인 밴드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게끔 기회를 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무슨 정책처럼 되어 가는 것 같아요. 인디 레이블들은 단지 ‘cool’하다는 것만으로 자신들의 영세성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어쨌든 인디니까 우리는 근사하다’는 식으로. 하지만 난 믿을 수 없습니다. 왜 인디 레이블은 밴드에게 보수를 지급할 수 없답니까? 인디라서?
▶ 그런데도 인디에 계속 남아있는 밴드들은..
코건 그건 단지 그들이 메이저 레이블에 있을 만큼 충분히 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메이저 소속이라는 사실 자체엔 아무 잘못된 게 없어요. 그러니까 내 말은.. 보세요, 모든건 정책(politics)입니다. 당신들은 나름대로의 정치적 문제가 많은 나라에 살고 있고 나도 우리 나름대로 정치적 문제가 많은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내용은 어쨌거나 음악에 관한 겁니다. 그리고 음악도 하나의 정책이지요. 하지만 종국에는 음악만 좋다면 사람들은 살 수 있는 돈이 있는 한 어쨌건 그 음악을 듣고 싶어 할 거고 또한 그 음반을 살 겁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내 음악이 보다 많이 팔리고 들려지기를 바라게 되는 겁니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업계에서 가장 서글픈 일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당신이 겪어 본 바라든가 아무튼.
코건 가장 슬픈 일은 이것이 거대 사업이기 때문에 오히려 음악 자체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한 비즈니스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선 음악보다는 돈이 우선이지요. 그러므로 정말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아주 아주 강해야만 합니다. 예컨대 우리는 지금 스파이스 걸스와 같은 레이블 소속인데, 스파이스 걸스는 음악과는 별로 관계가 없지요. 그들의 주안점은 돈을 버는 것입니다. 그게 가장 슬픈 사실이죠. 그리고 음악 업계에 있으면서 음악에 관심없는 사람들, 음악 보다는 수퍼스타 만들어내는게 더 관건인 사람들과 지금 우리는 경쟁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다들 짐 챙기는 분위기. 인터뷰 도중에도 몇번이나 채근하는 메시지가 스탭들로부터 귓속말로 전달되어 온 터라 더 머무르겠다 뻗댈 상황은 아니었다(그럴 생각도 없었거니와). 그 와중 빌리가 일어나 악수를 청했고 그 손에 그들의 기사가 실린 서브(6 페이지밖에 안 된다고 그토록 욕먹었던 바로 그 6월호)를 건네주며 “물론 한국어를 읽을 수는 없겠지만..” 운운하며 중얼거렸는데, 빌리는 이내 표지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발견해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인터뷰는 빌리에 대한 당연함과 의외감을 동시에 남겼는데 그것은 ‘역시 대단한 자긍심의 인간’이라는 것과 ‘뜻밖에 위트와 논리가 모두 정연한 남자’라는 것이었고, 더욱 의미심장한 건 그 후감이 결코 부정적인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헌데 배가 고파서 였을까, 방을 나서며 몇 시간 후에 있을 공연에 정말 차를 줄까 하는 의문이 문득 심각하게 드는것이었다. 아무래도 여독이 덜 풀린듯 했다.

THANKS TO : 배경천 (EMI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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