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Glamourous
80년 MTV의 출현은 20세기가 역사에 남길 세가지 거대 발명품-텔레비전, 라디오와 녹음된 음악의 궁극적 혼합물, 뮤직비디오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음반사에선 저렴한 비용으로 뮤지션의 다양한 측면을 홍보할 수 있고, 뮤지션에겐 자신들의 예술적 야심(혹은 멋진 외모)을 발휘할 또다른 수단, 그리고 영미 음악계에서 멀리 떨어져 어쩌다 베풀어지는(!) 공연이나 짧디 짧은 프로모션 투어를 애타게 기다리는 변방의 음악팬에겐 자신의 우상을 시각적으로 점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 매체는 비록 문화제국주의를 담은 통조림 깡통이라 할지라도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으니, 뮤직비디오 없는 음악 체험을 이제 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한편, 새로운 그릇은 새로운 내용물을 요구하기 마련. 디스코의 광기도 잦아들고 록음악도 자기반복 속에 갇힌 미국 음반산업계는 귀를 간질이는 리듬, 입에 단 멜로디로 무장한 일군의 화사한 영국 젊은이들을 수입하는 데 이르렀고 이는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영국 침공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후기 록시 뮤직, 「Low」시기 데이빗 보위의 혼성모방을 기반으로 뉴 웨이브를 경유하여 펑크의 유산과 접속했던 이들의 반질반질하고 춤추기 좋은 신서 사운드는 결국 펑크 정신의 대극점에 위치하게 되었으며 그 꼬리표는 일렉트로 팝, 댄스 팝, 신스 팝, 혹은 뉴 로맨틱스였다.

에게서 끌어와 한때 복고주의자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신서사이저의 여러 측면을 발굴한 그의 음악세계는 이후 뉴 오더를 필두로 한 음울하고 내성적인 신서사이저 사운드를 예비한 것이었다.

D u r a n ... D u r a n
버밍엄 출신으로 그 외모의 화려함과 90년대까지 명맥을 유지한 내구성의 측면에서 가히 뉴 로맨틱스의 간판스타라 할 수 있는 이들의 도래를 알렸던 것은 81년 <Girls On Film>의 축축하고 화끈한 뮤직비디오였다. 곧 아담 앤트의 틴 아이돌 자리를 물려받은 이들은 블라우스 프릴 휘날리는 미소년 이미지에 마스카라 사용으로 다소 퇴폐적인 느낌을 보탰고, EMI의 대대적인 후원과 케빈 고들리, 롤 크렘 등 비디오 감독들의 놀라운 포장술에 힘입어 마침 대성공을 거두며 창단된 10대 잡지 ‘스매쉬 히츠’지의 지면을 누볐다.

S p a n d a u ... B a l l e t
일링턴 출신 신생 밴드로 TV의 관심을 받으며 광고 문화 예술계의 젊은 직업인들로 구성된 폐쇄적인 청중을 앞에 놓고 공연했던 스팬도 발레는 신서사이저로 가벼운 유사-미래주의 사운드를 통해 건실한 노동의 윤리와 구식 낭만주의(!), 그리고 댄스 플로어의 향락주의를 전파하려 했다. 씬이 확장됨에 따라 그들은 <To Cut A Long Story Short>로 차트에 오르며 캠든 타운의 팰리스 등 레이저 조명이 번뜩이는 공연장으로 이전하였는데, 이 곳에는 밤마다 런던의 새로 나타난 멋쟁이들이 카우보이, 로빈 후드, 해적, 우주인 등 뭔가 로맨틱하다고 생각되는 복장을 갖춰 입고 모여들었다.

H u m a n ... L e a g u e
아트 스쿨 출신의 멀티 미디어 밴드로 출발하여 80년대 필립 오키(Philip Oakey)를 중심으로 베이시스트 이언 버든(Ian Burden)과 코러스를 담당한 두 여성으로 재구성, 세련된 일렉트로닉을 채용한 모로더 스타일의 주류 팝을 만들어내었다. 프로듀서 마틴 루셴트와 작업한 그들의 81년작 「Dare」는 80년대 일렉트로 팝의 정수를 담아내어, 그 그치지 않는 린드럼(Linndrum) 일렉 퍼커션, 반복적인 키보드 리프, 신서화된 베이스라인은 무수히 카피되는 모범이 되었으나 휴먼 리그 자신은 이후 그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O r c h e s t r a l ... M a n o e u v r e s ... I n ... T h e ... D a r k ... (OMD)
머시사이드(Merseyside) 포스트 펑크 씬 출신으로, 독일의 무감정한 전자 사운드의 선구자 크라프트베르크(Krftwerk)의 테크닉을 도입하여 과장된 일렉트

로 팝으로 탈바꿈시킨 OMD는 83년「Dazzleships」에서 어떤 소리든 프로그래밍하여 자유자재로 템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에뮬레이터 신서사이저를 도입, 그 청각적 가능성을 다소 코믹한 방향으로 시험하였다.

Alternative Mamas & Papas
90년대 일약 세대의 목소리, 시대의 사조로 떠오른 얼터너티브/그런지의 씨앗이 조용히, 그러나 맹렬한 기세로 발아하여 배양되고 있었던 토양은 미국의 대학도시 들이었다. 그 가운데는 R.E.M., B-52’s를 배출한 조지아주 애신스, 리플레이스먼츠, 허스커 두가 활동한 미니애폴리스, 다이너소 주니어, 픽시스, 쓰로잉 뮤지스의 보스턴과 앰허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아예 씬의 명칭으로 사용되게 된 시애틀이 손꼽히며, 이들 지역은 대학 라디오 방송, 라이브 클럽, 팬진과 무가지의 광고와 비평, 그리고 지역 인디 레이블의 존재가 결합되어 씬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주류의 안테나에 잡히지 않던 이들의 존재와 활동이 주목받게 된 데에는 본디 감수성과 음악성을 훼손하지 않고 스타로 떠오른, 80년대 미국 록의 존재증명 REM의 성공이 막대한 기여를 하였으며, 페리 패럴이 주도한 롤라팔루자 페스티벌의 대대적인 흥행성공, 시애틀 서브 팝 레이블의 활동을 계기로 본디 60년대 말, 영미의 언더 반문화 뮤지션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일반 명사 ‘얼터너티브’가 90년대의 상징으로 고착되게 한다.

T h e ... R e p l a c e m e n t s
프론트 맨이자 작곡자인 폴 웨스터버그(Paul Westerberg)가 주도하는 4인조 리플레이스먼츠는 81년 시끄럽고 빠르며 지저분한 펑크 사운드에 거칠한 쉰 목소리를 담은「Sorry Ma, Forgot To Take Out The Trash」로 데뷔하였다. 그들의 분수령 격인 84년작「Let It Be」에서 웨스터버그는 섹스 피스톨즈와 모드 밴드 페이시스(The Faces)를 똑같이 애호하는 폭넓은 음악취향을 반영하는 범상치 않은 깊이의 작곡을 선보였고 비평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내며 난폭하고 술에 젖은 라이브가 일종의 전설이 되면서 사이어/리프라이즈(Sire/Reprise) 레이블에 곧 스카우트되어 4장의 앨범을 발표하였고, 그 중 85년작「Tim」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알코올 문제와 내부 불화, 그리고 멤버들의 신경쇠약으로 90년「All Shook Down」을 내놓은 후 해체된 하드코어 씬과 얼터너티브의 주요한 연결고리의 하나.

H u s k e r ... D u
하드코어의 기초자 블랙 플랙의 레이블로 밴드의 기타리스트 그렉 긴이 운영하는 SST 레이블 소속인 허스커 두의 81년 데뷔앨범「Land Speed Record」

는 각성제 애호를 암시하는 제목에 베이스, 드럼, 기타의 맹렬한 폭발을 담았다. 그룹의 두 작곡자 밥 몰드(Bob Mould)와 드러머 그랜트 하트(Grant Hart)는 개인적인 분노와 혼돈, 강박관념을 풀어내며 영적 각성을 추구하는 작업으로 포스트 펑크의 레넌-매카트니의 지위에 올랐고 85년작「New Day Rising」이 평론가들의 상찬을 받았다. 그러나 내부적 압력을 견뎌내지 못하고 87년의 훌륭한 더블 앨범「Warehouse : Songs And Stories」를 내놓은 지 얼마 안되어 해산하고 말았다.

T h e ... B u t t h o l e ... S u r f e r s
R.E.M.의 멜로딕한 포크 팝송의 대극점에 위치한 것이 여성 누드댄서의 율동, 끔찍한 사고 현장 슬라이드를 배경으로 공격적인 연주를 펼치는 아나키적인 라이브로 악명을 떨친 텍사스 밴드 벗홀서퍼스였다. 기비 헤인즈(Gibby Haynes)가 주도한 이 주변인을 위한 컬트 밴드는 약물, 마리화나와 맥주의 다량 섭취로 영감을 얻어 다다의 영향이 뚜렷이 감지되는 노이즈의 물컹한 덩어리들을 토해내면서 향락주의와 말도 안 되는 짓거리들을 찬양하였으며 펑크, 메틀, 아트록, 그리고 토속 리듬이 극단적 혼합을 이룬「Locust Abortion Technician」(87)에서 극에 달하였다. 그러나 80년대 말 무렵에는 이들도 맹렬함을 잃고 길고 종잡을 수 없는 사이키델릭 잼에 탐닉하였고, 약물에 젖은 지지자들과 함께 ‘언더그라운드의 그레이트풀 데드’라는 명명을 가능케 했다.

P i x i e s
88년「Surfer Rosa」로 데뷔한 픽시스의 음악세계는 조이 산티아고(Joey Santiago)의 물어뜯는 기타, 킴 딜(Kim Deal)의 나긋나긋한 베이스, 그리고 싱어이자 작곡자인 블랙 프랜시스(Black Francis)의 수줍은 동시에 울부짖는 보컬의 승화물로서 손쉬운 분류를 불가능하게 하는 냉소적인 자장가라는 기이한 영역을 형성하였다. 전작에 비해 다소 깔끔해진 89년작「Doolittle」은 <Monkey Gone To Heaven>, <Here Comes Your Man>두곡이 모던록 차트 10위권에 오르는 성적을 거뒀으며, 평도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미국에서보다 유럽과 영국에서 더욱 환영받은 이 밴드의 기괴한 가사는 데이빗 린치 영화의 록버전이라는 비유를 가능케 하였고, 그 독보적인 사운드는 ‘포스트 모던’의 형용사를 진정으로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D i n o s a u r ... J r .
80년대 후반 무수한 거라지 밴드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런지’가 운위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눈에 띠는 존재였던 다이노서 주니어는 닐 영의 펑크 추종 남동생처럼 세상을 보고 노래하는 싱어, 송라이터, 기타리스트인 제이 메이시스(J Mascis)가 주도하여 83년 결성된 3인조 밴드였다. 하드코어 드러머였던 메이시스는 기타를 잡은 후 멜로디와 파워의 숨가쁜 소용돌이 속에 간결한 리리시즘과 노이즈의 항연의 낯설고도 매력적인 혼합물을 만들어내었고, 87년 SST에서 발매한「You’re Living All Over Me」는 일약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동료 소닉 유스의 지지를 얻어냈다.